비행기는 스페인령 서사하라의 수도 엘아이온 임시 비행장에 쿵 소리를 내며 착륙했다. 호세는 카키색 셔츠에 지저분한 청바지 차림으로 머리와 수영이 먼지로 뽀얗게 뒤덮힌채 나를 맞아주었다. 그의 얼굴은 바람에 그을어 있었지만, 눈에는 뭔가 남 모르게 고통을 겪고 있는 듯한 빛이 서려 있었다. 그렇게 짧은 기간에 그토록 많이 변한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드리드의 공원에 앉아 사하라사막에 가 보고 싶다는 내 평생의 소원을 그에게 털어 놓은 것은 불과 2개월전의 일이었다. 대만에 살던 소녀시절에 어떤 잡지를 뒤적이다가 사하라사막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왠지 모르게 그 사막이 마치 내가 태어난 고향이나 되는 것처럼 갑자기 향수에 젖게 되었다. 호세도 잘 아는 일이지만, 그 후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했어도 한군데 진득하게 붙어 있지를 못했다. 그래도 사하라사막에는 꼭 가 보고 싶었다.
호세는 그런 나의 계획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우린 여러 해 동안 친구로 지내왔소." 그는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언제나 쏘다나기만 좋아하죠. 이제 내가 병역을 다 마치고 나니까 또 떠나려고 하는 군요.'
1974년 1월 , 호세는 나에게 아무말도 없이 짐을 싸 갖고 스페인령 사하라로 훌쩍 날아가 버렸다. 그러더니 엘아이온 근처의 인광회사에 취직을 하고는 편지를 보내 왔다.
"당신과 늘 함께 지내려면 결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소, 올 여름에 식을 올리는게 어떻겠소?"
그의 편지를 열 번이나 거푸 읽고 나서 나는 밖으로 나가 한참 동안 길을 거닐었다. 산책을 하고 돌아왔을때, 내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호세는 먼지투성이의 가설활주로에서 내 여행가방을 들어 올렸다.
"저기 당신이 그리던 사막이 있어요."
그는 말했다. 북받치는 감정에 못 이겨 나는 고개만 끄떡였다. 기울어 가는 석양이 끝없이 펼쳐진 모래벌판을 핏빛으로 길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모래 섞인 세찬바람이 우리에게로 휘몰아쳤다. 그것은 아름다우면서도 간담이 서늘할이만큼 무서운 장면이었고, 그래서 나의 낭만적인 꿈은 졸지에 크나큰 시련을 바뀐 듯 싶었다.
호세- 성명은 호세 마리아 께로 루이스-는 백키로나 떨어진 그의 작업장에 있는 회사기숙사에서 기거하고 있었지만, 둘이서 살집은 엘아이온 교외에다 벌써 세들어 놓고 있었다. 걸어서 사십분 걸리는 그곳까지 가는 동안 , 길가의 집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피어 올랐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남색의 헐거운 웃을 걸치고 있었다. 저 멀리에는 초라한 천막집과 골함석으로 만든 오두막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그 너머로는 낙타와 산양떼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딴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네모 반듯한 벽돌집들이 들어찬 거리에 이르렀다. 맨 끝에 있는 가장 작은 집은 바윗돌과 흙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집 앞에 쓰레기장이 있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살 집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우리가 들어선 방은 자그마한데다가 지붕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파리가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는 전기줄에 달린 희미한 전등말고는 이 구멍이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곳이었다. 방 한쪽의 구석의 갈라진 틈으로는 바람이 휘익 소리를 내며 새어 들곤 했다. 부엌에는 불결하고 금이 간 조리대가 놓여있었다.수도꼭지를 틀어보니 이끼 썩인 액체가 몇 방울 똑똑 떨어질 뿐이었다. 욕실에 수세식 변기가 있었으나 물탱크라고 없었다.
호세는 초조하게 내 눈치를 살피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마음에 들어요. 손질 좀 하면 되겠어요"하는 내말이 마치 남의 애기처럼 들렸다.
첫날 밤 나는 슬리핑백 속에 들어가 자고 그는 새로 산 담요를 덮고 잤다.다음날 우리는 마루에 깔 돗자리와 양동이, 걸레, 솔을 사고 집안청소를 시작했다.한참 일을 하고 있으려니까 동네 아이들이 천장의 채광구를 통해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세는 될수록 돈을 많이 벌려고 특근까지 했기에 때문에 주말에나 집으로 왔다. 하지만 나는 여러가지 일에 쫓기는라 여념이 없었다. 엘아이온의 우물물은 소금기가 많은 짠물이었다. 그런데 이웃의 한 여자는 단물을 사러 갈때마다 꼭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십리터들이 물통을 가득 채워 갖고 타는 듯한 불볕 속에서 돌아오느라면 나는 언제나 뒤로 처졌다.
" 정말 딱한 사람이로군요!" 그여자는 나를 보고 웃으며 큰 소리로 놀리곤 했다." 평생 물 한번 길어 나른 일도 없었나 보죠?"
우리는 냉장고와 가스난로를 사들였지만, 가스가 다 떨어졌을 때도 나는 가스통을 들고 시내로 바꾸러 갈 힘이 없었다. 그래서 이웃집의 숯불의 풍로를 빌려다가 방바닥 웅크리고 앉아 음식을 만들었다. 낮에는 벽이 너무 뜨거워 손을 댈수 없을 정도였고, 저녁이 되면 얼어붙을 듯이 추웠다. 우리에게는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마루의 돗자리에 앉아 바람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했다. 부모님이 지금의 내 모습을 보신다면 어떨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를 손 안의 구슬처럼 애지중지 응석받이로 길러 주셨는데.
어느 날 호세는 자기가 가구를 만들겠으니 나무를 좀 사다 놓으라고 했다. 그러나 목재상에 가 보니 우리가 세운 예산으로는 턱도 없었다. 나는 목재상을 그냥 나오려다가 마당에 큼직한 나무 상자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주인에게 몇 개쯤에 주겠냐고 청했다. 주인이 다섯개를 주어서 나는 그것을 나귀마차에 싣고 왔다.나무를 구한 것이 너무 기쁘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호세는 나무상자들을 지붕 위로 끌어 올리고 나서 모두 뜽뜯어 놓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가 일하러 간 후에 나는 이웃사람들이 염소우리를 만들려고 판자를 많이 훔쳐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귀중한 재산을 지킨답시고 진종일 지붕 위에 죽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나는 쓰레기장에서 빈 깡통 몇개를 주워다가 줄에 매달아 도난 경보용으로 나무 둘레에 쳐 놓았다.
그날 오후 내가 스페인에서 선편으로 부쳤던 약간의 책이 도착했는데, 그 가운데는 사진첩도 하나 있었다. 어떤 스냅사진은 야회복을 입고 어깨에 모피코트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는 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머리를 빗어 올리고 귀걸이를 하고 베를린의 오페라극장를 나오면서 찍은 것이었다. 마드리드의 구시가지에 있는 한 조그마한 호텔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춤추고 있는 모습의 사진도 있었다. 사진들을 다 보고나서 나는 땅바닥에 벌렁 누워 버렸다. 이미 내가 죽어서 영혼이 뒤에 두고온 친구들 곁으로 돌아 간 듯한 허탈한 기분이었다.아니야, 뒤를 돌아 봐선 안 돼. 지붕 위을 깡통이 딸그락거리고 있었다 지금의 나로선 저 소중한 판자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결혼선물은 사막의 "꽃"
내가 엘아이온에 도착한 직후, 우리는 혼인 절차에 대해 문의하러 법원으로 갔다. 스페인사람인 백발의 법원서기는 말했다. "우린 여기서 결혼식을 집행해 본적이 한번도 없읍니다. 이곳 사흐라위족 주민들은 자기네 관습에 따라 식을 올리죠. 그거 그렇고 법률책엔 뭐라고 쓰여 있는지 봅시다." 그는 책장을 넘기며 죽죽 흩어 나갔다." 아 여기 있읍니다. 두분의 출생증명서와 미혼임을 입증하는 서류, 그리고 이곳의 거류허가증이 있어야 하고, 우린 사전에 결혼을 예고하게 돼 있군요. 아가씨의 서류는 자유중국에서 발급된 것을 스페인어로 번역하여 영사관에 제출하면 공증을 받아 스페인 외무성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서류가 이곳으로 발송돼 오면 우리가 확인한 다음15일간 결혼예고를 하고 , 그런 다음 서류를 다시 마드리드의 전주소지 구행정관실로 보내 거기서도 결혼예고가 있게 됩니다." "다 끝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호세가 물었다.
"3개월 내지 5개월 정도 되겠지요."
호세는 이마에 흘러 내린 땀을 닦아 내며 말했다."일을 신속히 처리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우린 기다릴수가 없어서..."
늙은 서기는 내 허리께를 힐끗 훔쳐보았다. " 전 조금도 급하지 않아요." 나는 재빨리 말했다."안달하는 건 저이 뿐이에요." 이런말은 오해만 더 만들 따름이었다. 호세가 그 서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 우리는 도망치듯이 법원건물을 빠져 나왔다.
몇 주일이 지나고 마침내 어느 타는 듯이 뜨거운 날, 백발의 법원서기는 느닷없이 통보를 했다. " 아가씨는 이제 결혼해도 좋읍니다. 두 분을 위해서 아주 좋은 날을 잡아 놓았죠. 내일 오후 6시입니다."
"내일이라고 하셨나요?" 나는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늙은 서기는 기분이 상한듯이 보였다. "호세씨는 결혼을 가급적 빨리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소?"
나는 창 밖으로 멍하니 사막을 내다보았다. 그때 호세가 다니는 인광회사의 지프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거리로 뛰쳐 나가 운전사에게 손을 흔들어 차를 멈추게 했다."호세 한테 내일 저랑 결혼할거라고 말 좀 전해 주세요."
운전사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호세씨는 자기가 내일 결혼하다는 것도 모른단 말입니까?"
"그래요." 나는 소리쳤다. "저도 몰랐던 걸요."
이틀날 오후 , 물을 날라 온 뒤 잠깐 눈을 붇이고 있는데 그이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 당신에게 줄 선물이 있어요." 그는 큼지막한 상자를 들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낚아채듯이 그것을 움켜잡았다."꽃이군요!"
"저런 사막 어디서 꽃을 찾아 본단 말이오?"
그것은 커다란 치열을 드러낸 채 나를 보고 히죽 웃는듯한 낙타의 하얀 두개골이었다. 나는 기쁨에 넘쳐 탄성을 질렀다." 너무 멋져요!"
그이는 과연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이걸 어디서 구했어요?"
"형체가 완전한 걸 찾아 사막을 헤매느라 죽을 뻔했소" 그는 매우 흡족해하며 말했다." 당신이 좋아할 줄알았지. 그건 그렇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늦겠어요."
우리는 시내까지 줄곧 걸어 갔다.하루의 이맘때면 사막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고 사막으리 끝없는 하늘 아래 살아 움직이는 건 오직 우리 둘뿐이었다."결혼식에 걸어서 가는 신부는 아마 당신이 처음일꺼야." 그가 말했다.
"낙타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 갔으면 좋았겠어요."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판사는 우리 또래의 젊은이였는데 , 그의 손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에코 첸양, 그대는 호세씨의 아내가 되는데 동의하십니까?"
"네." 나는 대답했다.
"됏됐읍니다.!" 그는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호세에게도 비슷안 물음을 던지고 난 다음에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매는 듯했다. 드디어 그는 침묵을 깼다. "됐읍니다. 두 분의 결혼이 성립됐읍니다. 축하합니다."
결혼식이 끝나고우리는 다시 걸어서 귀가했다. 커다란 케익상자가 문밖에 놓여 있었다. 그이의 직장동료들이 가져온 것이었다.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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