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린자오(林昭)

한아이 2013. 8. 12. 16:26

린자오(林昭)

(19321216- 1968 429}

사진만 본다면

그냥 수다를 떨면서 자연스러운 친구가 될것같습니다

 

만약 제가 중국 자전거여행때 이런 아가씨를 만낫다면 어떤 야기를 나누었을까 하는 궁금종도 듭니다

 

아마 만났는데도

모르고 지낫갓는지도

아님 한번의 만남이지만

이미 마음속에는 친구가 되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한번 인사하러 가야하는데....

 

1932년 쑤저우 지방의 유명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난 린자오는 16세에 이미 지하 공산당 조직에 가담했다.

 

당시 국민당 정부에서 일하던 아버지와 공산당에 기울어 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공산주의의 계급의식에 철저히 동화되어, 부모에게 불법적 행위의 죄에 대해 참회하라고 요구할 만큼 철두철미한 공산당 전사가 되었다. 그녀는 마오쩌둥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1968년 그녀가 처형당한 후 그녀의 집을 방문한 경찰관이 물었다. “당신이 린자오의 어머니인가? 당신 딸이 처형됐다. 총알 값으로 5펜을 내라.” 그녀는 36살의 꽃다운 나이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린자오는 공산당이 뱀을 굴속에서 나오도록 유인하기 위해 벌인 백가쟁명운동의 희생양이다. 그녀는 마오쩌둥의 제창으로 1957년부터 시작된 백화제방·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운동이 공산당에 대한 건강한 비판을 통해 공산당이 바르게 나아가야 할 길을 열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전국 각지의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앞을 다투어 영명한 선생님이고, 위대한 지도자이며, 위대한 최고 사령관이고, 위대한 안내자이며, “붉은 태양들 중에서 가장 빛나는 위대한 해방자인 마오쩌둥의 개인숭배와 오류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중국 공산당의 사이비 사회주의를 비판했다.

 

마오쩌둥이 야심차게 시작한 대약진운동은 약 3천만 명이 굶어죽는 중국 역사상 최악의 대재앙을 초래했다. 린자오는 인민들을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간 대약진운동을 비판하고, 역시 대약진운동을 비판했던 펑더화(彭德懷)를 축출한 것에 항의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자신이 앞서 권장하던 공산당 비판 운동을 스스로 뒤집어 반주자파운동으로 공식 선언하고, “만발했던 꽃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린자오가 분노한 이유는 바로 학생들에게 공산당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지적해달라고 요구한 당의 방침이 기만적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5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노동수용소로 끌려갔고, 베이징대학에서는 전체 교수와 학생 8천 명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1,500명이 처벌받았다. ‘무오류의 마오쩌둥에 도전한 린자오에게 돌아온 건 혹독한 수감생활이었다. 이때부터 3년 징역형으로 시작된 린자오의 고행은 의료감호처분에 이어 지하잡지 출판으로 재구속되는 등 10년간의 옥중 투쟁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생살을 찔러 피로 쓴 옥중수기, 풍자시, 수필, 편지, 공소장 등에 자유와 민주에 대한 그녀의 갈망이 짙게 배어있다. 하지만 그녀의 희구를 공산당은 위대한 영도자인 마오쩌둥 동지에 대해 미친 듯이 공격하고, 저주하고, 중상한 것으로 규정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극단적인 증오와 적의를 가진 범죄행위로 단죄했다.

 

 

 

 

 

 

 

苏州灵岩山묘지

 

 

 

苏州灵岩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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