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도록 애쓰는 삶이 남기는 건 그득하지도 않은 통장 잔액과 돌연사 또는 성인병과 외로운 노후일 뿐. 그걸 알아챈 사람들이 삶의 태도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이른바 ‘적당히 살기’. ‘대충’ 살기와는 다르다. 덜 일하고 덜 벌고 덜 쓰고 덜 휘둘리는 삶. 대신 자유와 시간을 보상 받는 삶. 선물 같은 삶.일 중독 사회의 정시근무자로 사는 한, 일과 삶의 균형을 잡아 가며 적당히 사는 건 불가능하다.
“‘적당히’는 지금 내 마음이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적게 소비하고 많이 누리는 삶이 목표다. 적게 버는 만큼 삶의 여유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더 밀도 있게 살 수 있나를 고민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불안하고 쫓기는 마음이 함께 살면서 누그러졌다.”
“회사 다니며 개미처럼 일해도 불안했다. 개미처럼 일해서 대부호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안락한 노후를 맞기 전에 죽을 수도 있다. 생존과 사회ㆍ지역활동,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정도만 돈을 벌고 나머지 시간은 나를 위해 쓴다. 돈을 적당히 쓰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오늘의 나를 위해 사는 게 결국 미래의 나를 위한 것이다. 행복하지 않을 때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다는 게 적당히 살기의 미덕이다.”
.할 일이 있다면 돈과 지위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삶이 요즘 젊은 세대의 지향이다. 그런 물질적 지표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이다. 나이 든 세대도 ‘살아 보니 이렇게 살 필요 없었네’ 후회한다. 취미가 있는지, 봉사 활동 같은 가치 있는 일을 하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치열하게 살아야 행복하다면 그렇게 살면 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게 성숙한 사회다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어린 시절 수 없이 듣는 질문이다. “얼마나 많이 벌고 높이 올라가려느냐?”는 속뜻. 아이들의 필독서는 부모의 욕망이 투영된 위인전이요, 어른이 되면 자기계발서에서 성공의 길을 찾는다. 얼마 전까지 자기계발서는 “견뎌라” “혹사당하라” “미쳐라” “오늘을 희생하라”를 주문했다. 내가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사는 건 해이한 정신 상태 때문이라는 자책으로 끝난 독서들이다.
아프니까 청춘인 게 아니라, 아픈 건 정상이 아니라는 위로. 그리고 힘을 빼고 나답게 살아야 덜 아프다
“‘미치고 아파라’는 책을 읽고 산 세대가 행복해졌나. 아등바등 살아 봐야 치킨집 사장님이 되는 건 똑같다. 요즘은 ‘중산층의 삶도 괜찮다. 가진 것을 관리하며 적당히 누리는 삶으로 족하다’고 한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시간이라고 인식한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소득을 끌어 올리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됐다.”
적당히 사는 게 뭐 그리 어렵겠어? 오산이다.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멋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